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힘쓰는 세계 [유레카]
지난 4월 14일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욤하쇼아’였다. 1953년 법제화된 이 날에는 오전 10시 전국에서 사이렌이 2분간 울리고, 모든 차량과 보행자가 멈춰 서서 희생자를 묵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적 행보는 ‘moral superiority ’이 피해 경험에서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인 1948년, 팔레스타인인 7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거나 강제로 추방당했다. 이스라엘 ‘신역사학자’라 불리는 일란 파페는 이를 ‘의도된 ethnic cleansing ’로 규정한다. 이 같은 과거는 현재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historical background가 된다.
2023년 10월 발발한 가자 전쟁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되는’ 비극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계 유대계 미국 저널리스트 마샤 게센은 12월 뉴요커 기고에서 “가자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떠올리게 한다”며, 홀로코스트의 교훈인 “never again ”가 오히려 폭력 정당화 수단으로 무기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샤야후 레이보비츠(1903~1994)를 비롯한 생존자와 학자들은 “victimhood를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을 막는 보편적 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6년 보건 비상대응 호소문’은 충격적인 통계를 제시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79개국에서 48건의 전쟁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며, 가자는 그 중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병원의 약 94%가 손상·파괴됐다. WHO는 “세계가 crisis creation은 많은 비용을 쓰고, resolution은 적게 쓰는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crisis-making world ’라는 표현은 아프게 다가온다. 자신을 absolute good로 여기며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이스라엘식 피해자 의식’이 이런 전 지구적 기능 부전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재명 대통령과 이스라엘 간의 ‘학살과 보편 인권’ 논쟁을 다시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주장이 crisis-solving world에 걸맞은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security policy가 안보 정책이 오히려 장기적 regional stability를 지역 안정을 해치고 있다. 단기적 위협 대응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WHO의 지적이 핵심이다. 우리는 매년 수십 건의 humanitarian crisis를 인도적 위기를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political will은 정치적 의지는 투자하지 않는다.
피해자 서사를 정당화의 도구로 쓰는 건 모든 사회에 있는 위험한 유혹이다. 과거의 아픔을 반성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면, 결국 또 다른 폭력의 기반이 된다.
가자지구에서 94%의 병원이 무용지물이라니… civilian protection은 민간인 보호는 이미 무너졌고, 이제는 의료 체계마저 붕괴 중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왜 다른 민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그 이중성 자체가 가장 큰 도덕적 위험이다.
이 기사가 제기한 ‘crisis-solving 위기 해결 지향’의 세계란 어떤 모습일까? 단순 비판을 넘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안도 필요하다.